top of page

나는 2021년 8월의 어느 날 틀에 부어진 꼴에 관한 이야기를 처음 꺼냈다.

 

2020년 5월과 8월, 내가 진행했던 누울자리 워크숍과 마음지도 만들기 워크숍에 도연희 기획자가 왔었다. 그리고 나를 새로운 프로젝트로 초대했다. 한국만의 아름다움과 우리의 역사를 보다 재미있게 체험할 방법을 고민해왔고 디자이너 주혜림을 만나 [ 발견 그리고 덧댐과 이음 ]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라고 했다. 그들은 한국의 문화유산 9가지를 명품으로 선언하고 그것을 '지금-여기'에 걸맞은 언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해왔다고 했다. 그리고 내게 < 무령왕릉 >을 함께 공부하고 사람들에게 예술 언어로 소개해보자고 제안했다. 

 

나는 지나온 길을 돌아보는 일을 즐긴다. 그 여정에서 내가 만난 사람들, 배운 것을 새로운 각도에서 다시 살펴보는 일이 좋다. 지나고 보면 그 모든 만남과 배움이 내가 빚은 마을 같다. 나는 수없이 많은 마을을 짓다가 부수고, 혹은 짓기를 그만두고 이곳까지 왔다. 그 과정 구석구석에는 다양한 모습의 내가 있다. 수없이 많은 나를 발견하고 다시금 들여다보면서 다양한 나들(?!)의 관계를 정리하는 일이 좋다. 그렇게 내가 나의 다양한 면들을 살피다 보면 나의 벗들과 이웃, 동료들이 이해될 때가 있다. 그렇게 한차례 타인을 이해하고 나면 어쩐지 어제보다 나은 내가 된다. 쓸모 있는 구성원으로 성장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나는 자주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 상상한다. 그러다 2017년 석사논문을 핑계로 <프리블릭 아트>라는 나만의 일을 만들었다. 프리블릭은 내가 만든 신조어다. (private + public = priblic) 다양한 공공미술의 모습 속에서 내가 좋아하며 할 수 있는 일을 상상하다 만들게 되었다. 개인을 돌보는 일의 공공성을 연구하고 그 내용을 예술 언어로 전달하는 일이 하고 싶었다. 그래서 프리블릭 아트라는 나만의 개념을 만들었고, 사진이나 설치 같은 시각예술 언어로 생각을 발신하거나 워크숍이나 대화의 형식으로 소통하며 개인의 공공성에 관해 탐구한다. 세상 모든 사람이 스스로와 건강한 관계를 맺는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곳이 될 거라고 믿는다.  

 

그런 내게 <무령왕릉>을 출발점으로 삼은 프로젝트를 함께하자고 제안해준 일은 상당히 탁월한 선택이었다. 내게 이런 제안을 해주어 반가웠다. 물론 <무령왕릉>을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로 너무 오래 지나 듣게 되어 처음에는 무척이나 생경하고 낯설었다. 어쨌든 내가 걷고자 하는 길과 [ 발견 그리고 덧댐과 이음 ] 프로젝트가 닿아있다고 생각했기에 함께하기로 했다. 우리는 2021년 1월에 [ 도해치 ] 라는 이름으로 처음 만났다. 그렇게 매주 만나 무령왕에 관해 학습한 내용과 각자 작업의 진행 상황을 나누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다른 역할을 수행하며 하나의 프로젝트를 완성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욕심이 눈을 가려 중요한 것이 무언지 잊을 때도 많았고, 괜히 불안하고 조급한 마음이 들어 함께하는 동료를 괴롭힌 날들도 있었다. 마음만 앞서고 몸이 안 따라줄 때는 또 얼마나 많았던지. 이렇듯 함께하는 일을 하다 보면 오히려 자신을 들여다보게 된다. 다른 사람과 맞닿아야 내가 원래 어떤 틀에 부어져 지금 이 모양으로 성장해왔는지를 알게 된다. 다른 이들의 모양을 마주하고 나서야, 내 모양도 바로 알게 되고 다른 모양들끼리 함께할 방법도 생각하게 된다. 결국 함께하는 일은 내가 어떤 여정을 지나 지금 이 모양이 되었는지를 돌아보게 하는 일이고, 다른 이들과는 다른 나의 모양을 인정하게 하는 일이며, 그렇게 결국 보다 따듯한 미래를 꿈꾸게 하는 일인 것 같다. 

 

[ 발견 그리고 덧댐과 이음 ]이라는 프로젝트를 만나게 되어 나는 무령왕릉에 관해 다시 알게 되었다. 무령왕릉의 발굴과 그로 인해 밝혀진 백제의 수려한 문화에 관해 공부했고 발굴된 유물에 나의 이야기를 덧대어 보았다. 특히 다른 나라와 교류하면서도 어느 것 하나 백제답지 않은 것이 없었던 부분이 감명 깊었다. 그래서 나도 모든 유물, 교훈에 나만의 해석을 적용했다. 특히 틀을 만들고 그 안에 석고 반죽이나 레진을 넣어 복제하는 작업을 할 때는 더 깊이 함께하는 일에 관해 생각했던 것 같다. 같은 틀에서 나온 덩어리라도 그 꼴이 조금씩 모두 다르다. 모든 덩어리가 같은 모습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연마해야 한다. 연마작업을 하면서는 우리가 모두 다르기에 함께 해야 하는 거라고, 채워진 빈 곳과 넓어진 경계를 보며 생각했다. 

 

공산성 성안마을에 무령파빌리온 O가 들어섰다. 나는 그 안에 나의 무덤을 꾸린다. 이 무덤을 핸드폰 플래시를 들고 탐험할 낯선 이들을 상상했다. 나는 무령파빌리온 O를 찾아준 이들이 <무령왕릉>에 관한 역사적인 사실이 곳곳에 묻어 있는 공간을 돌면서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하고 스스로에게 질문해주면 좋겠다. 전시되어있는 작품들을 보고 들으며, 또 이런 글을 읽으며 스스로에 관해 생각했으면 좋겠다. 무령왕릉과 닮은 전시 공간에서 스스로의 취향과 사유에 집중해볼 수 있다면 좋겠다.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