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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들.

 

무령왕릉에서 5200여 점의 유물이 발굴되었다. 무령왕과 무령왕비가 소지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부터 후대가 그들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이 담긴 유물들도 있다. 나는 나의 능에 내가 발견한 나의 다양한 면들을 두고 싶다. 성장하면서 겪었던 사건이나, 만났던 사람에 의해 새로운 면모가 생겨나는데, 그 새로운 면들의 태어남과 자라남을 기억하고 싶다. 시간을 오래 두고 내가 변화해온 이야기를 새로운 각도에서 다시 보는 일을 즐겼다는 이야기도 남기고 싶다. 마음의 깊은 곳에서부터 떠오른 나의 다양한 얼굴들을 기념하고 싶다. 그리고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그 곁에 두어야한다.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간략하게, 아주 간략하게 전한다. 

 

나는 장윤찬, 신현균의 첫째 딸로 태어났다. 내게는 하나뿐인 남동생이 있고, 우리 가족은 서로 참 많이 닮았다.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를 한국에서 보냈고, 14살이 되던 해에 미국 워싱턴 주 시애틀에서 1년살이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고등학교를 졸업했는데, 수능을 망쳤다. 수능 성적표를 받았던 날, 막막한 미래에 대한 해답을 구하러 성당에 들렀다가 양팔 묵주기도를 하던 아주머니를 지켜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 길로 가톨릭 대학교 신학교에 진학했다. 그 당시에는 ‘사람은 무슨 이유로 그렇게 간절히 기도할까’보다 ‘도대체 누가 어떤 응답을 얻기에 저렇게 간절히 올리는 기도가 있을까’가 더 궁금했다.

 

그곳에서 나는 공동체 생활에 관해 들었다. 그리고 그 생활을 그들의 동기로서, 친구로서 가까이에서 목격하였고, 모두가 고유하고 존엄한 존재로 공존-상생하는 세상에 관한 동경과 상상을 얻었다. 각자의 소명을 함께 기억해주는 일이 정말 아름다웠다. 서로의 소명을 챙겨주는 환경에서 나는 ‘나의 쓰임'에 관해 고민했다. 그러다 위로하는 사람, 곁에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고, 매체를 통해 위로를 전해보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지금까지와는 확연히 다른 틀거리를 찾아 짙어지고 싶은 마음이 들어 영국으로 떠났다. 그들이 지켜온 전통의 모습이 나의 것과는 확연히 달라 보였다. 그렇게 매우 다른 환경에 나를 던져두고 싶었다. 그러면 내가 느끼는 불편함과 어려움 속에서 오히려 가장 나다운 상태를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내가 언제 편안한지, 나의 고유함이 어떤 조각인지가 명확해질 것 같았다. 그런 이유로 영국 런던으로 넘어가 7년을 살았다. 나와는 너무 다른 틀거리를 살아내는 사람들 곁에 있었다.

 

다시 진학한 학부 과정에서 매체에 관해 배웠다. 미디어의 영향력, 정의와 부의 분배, 공정하고 형평에 맞은 것, 더욱 나은 세상에 대한 고민을 나누었다. 그 과정에서 <관념 세계가 아닌 실재하는 세상에 속하여 ‘기능하는’ 구성원으로 사는 일>에 관한 생각을 키웠다. 기능하는 구성원에 관한 고민은 기능하는 예술에 관한 관심으로 번졌다. 사진이라는 장르에 매료되었고 그를 활용하여 내 생각을 꺼내기 시작했다. 세상이 촉발하는 예술, 세상을 움직이는 예술, 예술로 변하는 세상과 예술이 세상에 주는 기쁨, 그리고 예술가로서 삶을 운영하는 일에 관해 배웠다. 그리고 내 이야기로 초상화 작업, 설치 작업 등을 시작했다. 내게 피어오르는 질문을 정돈하고 예술 언어로 불편함을 해결하는 과정이 좋았다. 나이젤 퍼킨스 교수님의 소개로 나는 공공미술 석사과정에 진학하게 되었고, 본격적으로 예술 생태계에 누울 자리를 마련하기 시작했다. 석사과정인 2년간 정말 훌륭한 예술인들 곁에 있었다. 그들이 <무엇이 예술인가>에 관해 전하는 모든 이야기들, 세상과 예술에 관해 꺼내는 모든 화두에 압도되고 매료된 채로 2년을 보냈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만 만날 수 있는 예술 그 너머의 이야기를 배웠다. 누군가의 사적인 공간에서 거리에까지, 예술은 한계를 너머 사람과 세상을 품어내는 것 같았다. 그렇게 석사가 끝났고 나는 <나의 예술>을 찾아 유랑했다. 석사 논문을 쓰며 적어낸 나의 다짐을 반추했다. 하찮을만큼 소소한, 그러나 여운이 깊은 혁명의 예술에 관한 생각들이었다. 마음 한 켠에 어렵게 받아낸 이 불씨를 꺼트리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이곳 저곳을 기웃거렸다. 그렇게 구비구비 지금 이 전시에까지 왔다.

 

이 여정에서 나는 10개의 서로 다른 자아를 찾아냈다. 어떤 아이는 오래전 생겨나 자라지 못하고 있기도 하고, 어떤 아이는 모든 자아의 앞에서 빛을 받으며 자신을 뽐낸다. 새로운 것을 향한 욕망과 갈증으로 새로 자아가 생겨나기도 한다. 세상에서 기능하는 수월한 방식은 전면에 가장 우월한 하나의 자아를 두고 그에게 인생 운영을 맡기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방법이 내게는 오히려 버겁고, 10개의 자아가 좌충우돌하며 우둔하고 미련하게 가는 방식이 편안하다. 그들을 지어진 모습 그대로 꺼내어 두고 도무지 효율적이지 않은 그들의 인생 운영에 기대어 산다. 그리고 이 수련이 모두가 고유한 형태로 공존하는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나아가 나의 이 수련이 서로 다른 우리 모두가 있는 모습 그대로 함께하는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길 간절히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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