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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수증, 잡지 속 이미지, 그리고 솜. 

 

무령왕릉에서 발굴된 왕과 왕비의 베개와 발받침이 눈에 들어왔다. 엄청난 정성을 들여 곱게 지어낸 베개와 발받침에 머리와 다리를 뉘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나는 어떤 생각과 발걸음을 눕히고 싶을까 궁금해졌다. 그래서 무령왕과 무령왕비의 베개와 발받침의 모양을 닮은 나의 배게와 발받침을 지었다. 천을 재단하고 바느질을 하면서 나는 나의 습관과 나의 발걸음을 뉘여야 겠다고 생각했다.

 

나의 하루는 고스란히 영수증 위에 담긴다. 지갑에 꾸겨넣은 영수증을 내려보고 있으면, 세상과 나의 관계가 보인다. 내가 무엇을 내 것으로 만들고, 그로 인해 어떤 세상에 지지의 메시지를 전하는지, 어떤 습관에 매번 굴복하고 마는지가 여실히 드러난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나의 소비습관은 한결같고, 아주 하찮고 반복된다. 영수증들을 정리해 보고 있으면 정말 많은 생각이 든다. 참 안락한 세상인데, 참 불편하다. 어떤 소비는 탄소중립과 같은 시급한 과제를 망각한 채로 이뤄지고, 어떤 소비는 내가 믿고 지지하는 세상과 원수지간인데 그런 발견이 한참 지나서야 알게되기도 한다. 혹은 아직도 모른다. 이렇게 뱅글뱅글 도는 생각을 뉘이고 휴식을 취하고 싶다. 생각을 멈출 수 있다면 좋겠다. 어떠한 방식으로 나를 뉘일 수 있을까. 그렇게 막막한 채로 여전히 생각을 진행하는, 그러니까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 채로 나의 시간이 다해 어딘가에 눕게 될 것을 체념하고 받아들여야만 하는 걸까. 아마도 마지막 날까지 이 고민은 끝나지 않을테니 말이다.

 

한편, 발은 따라 뛴다. 세상을 가득채우는 이상적인 모든 것의 이미지를 따라 뛴다. 생산된 이미지 속에 켜켜이 녹아있는 이상적인 삶의 모습이라는 허상을 따라 달린다. 휴식의 장면, 여가의 방법과 나의 공간을 채워 넣을 모든 것들이 ‘수준’과 ‘급’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나타나 나를 에워싼다. 이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나의 가치, 이런 가구를 구비할 수 있는 나의 능력을 뽐내고 싶게 만든다. 그렇게 이미지들에 떠밀려 이런 저런 정거장에 쓸려 내렸다가 다시 타기를 반복한다. 물론 그 와중에 간헐적으로 나를 편안히 쉬게 해주는 발걸음도 있다. 여전히 이 세상에서 기능하지만, 조금은 새로운 노동의 방식에 관해 생각하게 두기도 하고, 또 그러한 현장을 실험하는 발걸음도 있다. 그 발걸음이 조금 멀리 느린 걸음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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